비상을 꿈꾸는 두모녀 이야기-뇌성마비딛고 히말라야오르기까지 - 시민시대 [2003-02-28]

진영톨게이트를 지나 한참을 산길로 따라가기 시작하면 저수지를 끼고 있는 동화같은 집이 나온다. 빨간 지붕에 빨간 문, 유리로 된 벽, 마치 헨델과 그레텔에 나온 과자로 만든 집같이 때깔고운 집이 ‘작가의 집’이란 문패를 걸고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빨간 문을 ‘톡’ 하고 두드리자 반갑게 문을 열어주는 아름다운 사람, 작가 한경혜씨다. 몸에 밴 듯한 우아함과 그윽한 목소리로 기자를 맞이하며 문을 열어주는 그녀는 한국화작가이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 2회, 입선 5회를 수상하고 올해엔 홍익대 미술대학원 1학년에 재학중인 미술계의 재원이기도 했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어머니 유씨는 전통문화체험실을 청소하느라 시간이 좀 걸릴 듯. 조금 전에 전통문화체험을 위해 아이들이 다녀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통문화체험공간 ‘작가의 집’

“저희 둘이서 모든 걸 다 하려고 하니 힘에 부치네요. 많이 올 때는 50명씩도 다녀가는데 그땐 필요한 재료들을 밤새 다 준비해 놓아야 하거든요.”
청소를 끝내고 들어온 어머니 유씨. 경혜씨와 담소를 나누고 있던 중 씩씩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이 너무 청초해 경혜씨의 언니라고 해도 속을 정도.
한떨기 수선화처럼 쉽게 꺽일 것 같이 여려보이는 이 두 모녀가 ‘작가의 집’을 운영하게 된 것은 나름대로 사연이 깊다.
중3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경혜씨가 동양화에 그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23살 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하게 되었다. 워낙 그림을 좋아하던 그녀였기에 대학도 미대를 가고 싶어했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결국, 경영학과를 선택해 대학을 다니게 되었지만 미술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때는 어머니 유씨도 집짓는 일에 한참 재미를 느낄 때였다. 딸로 인해 제2의 인생을 살야야 했던 유씨가 찾은 것은 남자도 하기 어렵다는 집짓는 일. 오랜 세월 이 일은 두 딸과 함께 살아야 했던 모진 풍파를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결국, 어머니 유씨는 딸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어 지금 이 곳에 유씨의 개인작업실을 손수 지어 주었고, 작품활동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어머니의 마음이 딸에게 전해졌고 경혜씨는 그녀의 심성만큼 해맑은 작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부분 물을 소재로 한 그녀의 작품엔 자연과 함께 하고 싶은 바램을 담은 그녀 내면의 혼돈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지금까지 수상했던 작품들을 가지고 재작년에 일본에 가선 전시회를 열었어요. 거기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지요. 친구들을 집에 한 번 초청해서 한국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더니 이 곳을 작업실로도 쓰고 전통문화체험의 장으로도 활용해보라는 제안을 하더군요.”
조심스럽게 시작한 전통문화체험의 장. 작년 12월부터 어머니 유씨와 경혜씨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것은 두 사람에게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산골 깊숙이 두 사람만의 시간을 즐기던 이들에게 도시 사람들의 방문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는 경혜씨는 아이들이 단체로 올 때마다 신이 난다.
주로 김치담그기, 봄나물 캐기, 다도, 도자기굽기, 동양화 그리기 등의 이벤트를 준비하는 이 학습은 아이들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몇 명 다녀가 우리 전통문화를 고수하고 싶다는 유씨와 경혜씨에게 또다른 기쁨을 주었다. 물론, 주중엔 대학원수업을 들어야 하는 경혜씨이기 때문에 주말에만 열리는 수업이었지만 그것은 하나의 반란이었다.

굴곡이 많았던 삶을 딛고

경혜씨는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돌이 지나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에 병원에 갔다가 뇌성마비 판정을 맞은 것이다.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에 경혜씨의 뇌성마비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모성은 온전치 못한 자식이라도 품안 가득 끌어안을 수 밖에 없는 법. 병원에 매달려 보기도 하고, 좋다는 약은 다 먹여 보았다. 하루가 다르게 경혜씨의 증상은 더 심해져만 갔고 급기야 최후의 통첩을 받기에 이르렀다.
“경혜야, 너와 나와의 인연이 여기까지인가보다. 우리 다음에 만나면 꼭 행복하게 살아보자꾸나” 지금까지의 온갖 고생이 보람도 없이 무너지는 듯했다.
어느 날 어머니 유씨는 맏딸 경혜를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성철스님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찾아간 성철스님은 3천배를 하고 나면 만나주겠다고 했고, 경혜는 초등학교 1학년 뇌성마비의 몸으로 3천배를 해 성철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스님에게 받은 것은 화선지에 그려진 둥그런 원 하나와 매일 천배를 하라는 숙제뿐.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처지였다. 온전치는 못했지만 심성이 유난히 착해 어머니의 고생에 마음아파하던 경혜씨는 하루도 빼지 않고 천배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경혜씨의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걸음걸이에 중심이 잡혔고 말도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그 흔적이 지금은 안면마비정도로만 남아 있어 이젠 정상인과 별반 차이가 없다.
기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나약하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라 그 힘든 천배를 견뎌내었던 건, 끝없는 성찰을 통해 마음의 여유와 폭을 넓혀왔던 경혜씨만이 할 수 있었던 행동이었다. 지금도 경혜씨는 매일 아침 천배를 하며 자신을 단련하고, 그와 함께 계속해서 삶에 도전하고 있다.
대표적이 것이 히말라야 등반. 2000년 12월 그녀는 시각장애인 김소영씨(32)와 함께 히말라야 칼라파트라봉(해발 5,545m)에 올랐다. 성한 몸으로도 힘들다는 그 14박 15일의 험한 길을 경혜씨는 매일 108배와 함께 완주했고, 정상에서 겸허히 자연과 마주했다.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는 축하패러글라이딩을 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그녀의 도전이 장애인들의 꿈이 되고 있었다.

도전은 계속된다

언젠가 어머니의 고생에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던 경혜씨가 어떻게 해야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겠냐고 물은 적이 있다. 유씨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엄마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다. 정 은혜를 갚고 싶으면 나한테 갚지 말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 한 잔 정성스럽게 대접하고, 너보다 힘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돌봐줘라. 그것만이 너나 나나 전생에 지은 업보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니.”
이후 경혜씨는 매주 토요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무료수업을 실시하게 도었다. 또한, 자신의 꿈도 ‘무료양료원설립’에 두었다고 한다. 자신과 같은 멍에를 걸머진 이들과 함께 짐을 나누고,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현생에 진 빚에 조금이라도 보답코자 함이다. 때문에 경혜씨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도전한다. 오는 6월말부터는 어머니와 같이 고안한 십장생 스카프 전시회를 가질 계획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경혜씨는 이미 많은 작품을 창작해낸 인정받는 작가이다. 그렇다면 이런 그녀가 있기까지 그녀를 보살핀 유씨 또한 또 하나의 작가가 아닐까.
“이제 남은 희망은 이 곳을 소박하고 성실하게 꾸려나가고 싶다는 거에요. 그리고 우리 경혜 소망대로 경혜가 대학강단에 서게 된다면 더욱 좋겠죠. 나이가 찼으니 제 짝을 찾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고.”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욕심엔 끝이 없는 법. 옆에서 듣던 경혜씨 얼굴에 홍조가 돈다. 경혜씨의 고운 얼굴을 보며 기자도 기대해 본다. 그녀의 천생배필이 하루 빨리 나타나기를.


작가의 집 055) 345-9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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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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